영화 베리드는 저예산으로 만든 독특한 스릴러 영화로 우리나라에서는 2010년 12월 8일에 개봉했습니다. 2010년 선댄스 영화제에서 큰 호평을 받았고, 국내의 관객들이나 평론가들에게 꽤 괜찮은 반응을 끌어낸 영화입니다.
주인공으로 나오는 폴 콘로이는 평범한 트럭 운전수입니다. 이라크에서 트럭으로 운송업무를 하던 중 테러리스트의 공격을 받게 되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땅 속에 묻힌 관 속이었습니다. 테러리스트가 넣어놓은 휴대폰, 라이터, 그리고 가방 속 몇 가지 도구들로 주인공은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발버둥을 치게 됩니다.
영화 베리드는 주인공 단 한 명만 출연을 합니다. 휴대폰으로 통화를 하면서 여러 사람들이 등장을 하지만 목소리만 나올 뿐,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관 안에서 살기 위해 발악하는 주인공만을 보여줍니다. 처음 영화가 시작되고 주인공 폴이 관 안에서 깨어납니다. 상황을 파악하고 도움을 청하기 위해 휴대폰으로 여기저기 전화를 하게 되는데요. 911에 전화를 걸었을 때 주인공 폴은 본인이 왜 관에 갇혀있는지 상황 설명을 합니다. 아마도 이 장면은 관객들에게 상황에 대한 설명을 하기 위함으로 생각을 했는데요. 그래서 사고 당시 회상 장면으로 화면 전환이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아니었습니다. 그냥 주인공 폴이 관 안에서 테러리스트에게 당했던 그 상황을 설명하는 걸 보여줄 뿐입니다.
주인공 폴은 본인이 묻힌 곳이 어디인지 모르기 때문에 도움을 받기 위해 여기저기 전화를 하게 됩니다. 911, 집, 친구, 회사, FBI, 국방부 등등. 그중에서도 인질구출 팀장이라는 댄 브래너와 주인공을 땅 속에 묻은 테러범, 이 두 명과 제일 많은 통화를 하게 됩니다. 주인공 폴에게는 생존이 제일 중요하고 큰 문제입니다. 살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답답하고 좁은 관 안에 갇혀있으니 심리적인 압박도 엄청 날 텐데요. 실제로 촬영을 했던 폴 콘로이 역할을 맡은 라이언 레이놀즈는 촬영 중 과호흡으로 7번이나 기절을 했고, 촬영 내내 촬영장에는 구급차가 대기 중이었다고 합니다.
도움이 필요한 주인공은 본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여기저기 도움을 청하지만 그들 모두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합니다. 국방부는 언론에 알리지 말라는 걱정이 먼저고, 회사는 납치된 주인공에게 보상금을 지급하지 않기 위해 핑계를 대고 해고처리를 합니다. 테러범의 요구로 인질 영상을 찍은 주인공에게 인질구출 팀장 댄 브리너는 영상을 왜 찍었냐는 타박을 하고, 그 외 다른 인물들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주인공이 통화를 시작하고 중요한 전화번호를 관 위에 메모를 했는데 그 전화번호 메모 중심에 영어로 HELF라고 쓰여있고 가로로 선을 그은 장면이 나옵니다. 이 HELF는 주인공이 관 안에서 발견한 휴대폰에 남겨진 번호를 보고 날 도와줄 번호 일지, 날 여기 가둔 사람의 번호 일지 몰라 주인공이 HELF?라고 썼던 것인데요. 그 번호가 돈을 요구하는 테러범의 번호임을 알고 HELF 글자에 가로로 선을 그었던 겁니다.
하지만 그 후 국방부와 FBI, 인질구출 팀장 등등 도움이 될 것 같았던 모든 전화번호가 결국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고, 그 전화번호 한가운데 HELF 가 자리 잡고 있는 장면이 나오는 것입니다. 주인공의 절망적인 내면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댄 브래너는 폴을 안심시키기 위해 마크 화이트라는 의대생을 구출한 적이 있으며 그는 미국으로 무사히 돌아가 공부 중이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폴은 마크 화이트라는 이름을 전화번호 메모처럼 관 위에 적어 놓습니다. 마치 그 마크 화이트처럼 자신도 살아서 나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처럼 말입니다.
영화 마지막 주인공의 관은 공습 피해로 균열이 생겨 모래가 들어오는 상황이고 주인공은 구출되는 환상까지 보며 희망을 버리려는 순간, 주인공의 위치를 알아냈다는 전화가 옵니다. 지금 구하러 가는 중이다, 거의 다 왔다, 땅을 파고 있다, 이제 보인다 등등 주인공은 아내에게 전화해 살 수 있다, 곧 보자, 마지막으로 희망을 가집니다. 하지만 그들이 찾은 곳은 마크 화이트의 시체가 있는 장소였고 주인공의 관 속은 그렇게 모래가 가득 차게 됩니다.
영화 베리드의 결말은 단순합니다. 절망적이고 현실적인 주인공의 죽음이죠. 영화를 시작하면서, 주인공의 죽음은 정해져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개인의 목숨 앞에서 국방부와 FBI, 그리고 정부와 회사는 그들의 입장에서 판단하고 행동할 뿐 죽음을 앞둔 개인의 입장은 고려대상이 아닙니다. 테러리스트와 어떠한 협상도 하지 않는다는 미국과 영국의 입장을 현실적으로 잘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몸값을 요구하는 테러리스트에게 돈을 주면 그 돈으로 무기를 사고, 다음 테러를 준비하기 위한 자금으로 이용되며, 세계 전역에서 모방범죄가 일어날 것을 이유로 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구출작전은 있지만 협상은 하지 않는 그 원칙 속에서 무기력하고 절망적인 개인의 모습을 영화로 담은 게 아닐까 합니다.
영화 베리드의 시놉시스를 보면 '6피트의 땅 속에 묻힌'이라는 설정이 나옵니다. 영화에서는 나오지 않았지만 주인공의 관이 있는 곳의 깊이가 6피트라는 건데요. 6피트는 2m가 채 되지 않는 깊이입니다. 모래가 관 안으로 들어올 때 주인공이 그 모래를 헤치면서 위로 올라가면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겠지만, 그럴 확률은 0%에 가깝습니다. 관의 크기와 6피트라는 깊이를 생각했을 때, 주인공에게 그 위의 모래들이 한 번에 쏟아진다면 그 무게는 약 30톤이나 하기 때문입니다. 누구라도 그 상황이 되면 죽음을 피할 수 없을 것이고, 주인공 역시 그런 결말을 맞게 됩니다.
저예산이지만 독특한 매력이 있는 영화였습니다. 주인공 혼자서, 한정된 공간에서 진행되는 영화는 몇 있었지만 영화 베리드처럼 회상 장면 하나 없이 오직 관속만 처음부터 끝까지 보여주면서도 흥미롭게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영화는 처음인 것 같습니다. 재미나 감동이 있는 영화라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꼭 한 번쯤은 봐도 괜찮은 영화로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