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stand

[꼬꼬무 시즌3] 14회 입속의혀 유괴범과 꼭두각시들, 이윤상 유괴 살인 사건

두영~it 2022. 1. 20. 13:00

[꼬꼬무 시즌3] 14회
입속의혀 - 유괴범과 꼭두각시들

이윤상 유괴 살인 사건
(이야기친구 - 김태균, 에일리, 한승연) - 2022년1월20일, 밤10시30분 방송

이번주 꼬꼬무 시즌3, 14회는 1980년 11월 13일 당시 서울 마포구 경서중학교 1학년이었던 이윤상(1967년 6월 11일생, 사망 당시 13세)이 유괴되어 다음날 살해된 사건.

[꼬꼬무 시즌3] 14회 입속의 혀 유괴범과 꼭두각시들, 이윤상 유괴 살인 사건

꼬꼬무시즌3 이윤상 유괴 살인 사건

이윤상 유괴 살인 사건

 

당시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 거주하며 경서중에 재학하던 이윤상은 3살 때 소아마비를 앓아 왼쪽 다리가 불편한 상태였지만 뛰어난 우등생이라 전교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1980년 11월 13일 오후 4시경, 학교 체육교사인 주영형과 상담을 하러 간다며 외출한 뒤 유괴된다.

 

그리고 그날 밤 8~12시 사이 이윤상의 집에 범인으로부터 4차례의 전화가 걸려왔다. 처음엔 남자 목소리였는데, "당신 아들을 수원에 감금했다. 우리는 전과자들로 4명이다. 일본으로 밀항하려는데 돈이 필요하다. 현금 4천만 원을 준비해라. 경찰에 신고하면 당신 아들을 죽이겠다"는 내용이었다.

 

 

꼬꼬무시즌3 이윤상 유괴 살인 사건1

그리고 밤 11시경, 이윤상의 아버지에게 "나는 당신 때문에 망한 사람 중의 하나다. 윤상이는 수원에 감금되어있다. 현금 4천만 원을 준비해라"는 전화가 또 걸려왔고, 이에 이윤상의 아버지는 "불경기에 4천만 원은 준비할 수 없고 2천만 원은 준비할 수 있다"라고 답했고, 범인은 "내일 12시에 전화하겠으니 그때 시키는 대로 해라"라는 내용으로 협박한다.

 

다음 날 11월 14일, 이윤상의 아버지가 경찰에 유괴 사실을 신고한다. 경찰은 신고 접수 직후, 이윤상의 집 전화에 녹음장치를 부착하고 형사 2명을 잠복, 전화를 감청케 했다. (하지만 이윤상 군은 유괴 다음날인 이 날 이미 살해당한 상태.)

 

 

꼬꼬무시즌3 이윤상 유괴 살인 사건2

16일 오후 6시 40분경, 범인들이 이윤상의 미리 녹음된 목소리 "이분들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나는 죽어요"를 들려준다. 범인은 위에 전술된 내용대로 4천만 원을 요구했지만, 이윤상의 누나는 2천만 원을 준비한 뒤 약속 장소로 나간다. 하지만 범인들은 끝내 나타나지 않는다.

 

 

꼬꼬무시즌3 이윤상 유괴 살인 사건3

이후 범인들은 4월 6일까지 6차례의 협박편지와 62회의 협박 전화를 한다. 첫 번째를 제외하고는 협박 전화는 모두 여자 목소리였으며, 편지의 필적은 1, 2, 5번째 편지는 또박또박 쓴 여자 필적, 3~4번째는 거친 남자의 필적임으로 볼 때 경찰에서는 여자가 낀 3~4인조의 계획적 범행으로 추정한다.

 

범인들은 5번째 편지(2월 2일)에서 이윤상이 교통사고를 당했으며 아직 살아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꼬꼬무시즌3 이윤상 유괴 살인 사건4

처음 경찰에 신고한 것을 범인에 알리지 않기 위해 비공개로 진행했으나 협박이 장기화되면서 1981년 2월 26일, 경찰은 이 사건을 공개수사로 전환한다.

 

이 사건은 사회적으로 큰 관심을 끌었으며, 전두환 대통령도 특별 대국민담화를 열며 그 유명한 "살려 보내면 너도 살고, 죽여 보내면 너도 죽는다" 발언을 하고 제5공화국 출범일(3월 3일)까지 범인이 자수할 경우 관용을 베풀겠다 했으나 범인은 그날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실제로는 범인이 이윤상을 이미 살해한 상태였고 거짓말을 했던 상태였기 때문에 살려 보낼 수도 없었고, 사건이 장기화되면서 경찰에서는 최면술사까지 동원하기도 한다.

 

 

꼬꼬무시즌3 이윤상 유괴 살인 사건5

범인 주영형(가운데), 공범 여고생 2명(양 옆)의 사진.

 

범인은 1953년 3월 11일생으로 전남 광주시 출신인 주영형이다. 이미 자식이 둘이나 있었던 주영형은 서울대학교 ROTC 출신(학군 14기)의 예비역 중위인 데다 서울대 사범대학 체육교육과를 졸업하고 경희대 교육대학원, 고려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까지 취득한 대단한 엘리트에 차분한 인상과 호감 가는 외모로 평소에도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꼬꼬무시즌3 이윤상 유괴 살인 사건6

실제로 주영형에게 농락당한 여학생이 수십 명에 달했다고 한다. 경찰이 처음에 주영형을 의심했음에도 불구하고 곧 용의 선상에서 제외한 것은 그의 교사라는 신분뿐만 아니라 학벌과 외모에 현혹당했기 때문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당시 경찰은 이윤상을 사건 당일 불러낸 주영형에게 당연히 혐의를 두었으나, 아직 흉악범죄에 익숙지 않은 당시 사회 분위기상 학교 선생님이 그런 악질 범죄를 벌일 것이라 생각하기 어려웠던 데다가 주영형의 치밀한 범행 계획에 그 알리바이를 믿게 된다.

 

주영형은 뉴스 인터뷰에도 응하고 가족들을 위로하며 직접 수사본부에 찾아가기도 한다.

 

영구미제로 끝날 위기에 놓였던 이 사건은 1981년 11월, 주영형이 여중 재직 시절 교외지도를 빌미 삼아 여학생 20여 명을 성폭행한 사실을 경찰이 찾아내면서 수사에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또한 사건 당일, 이윤상이 "선생님이 어머니에게는 얘기하지 말고 나오라고 했다"라고 말했다는 모친의 진술이 실마리가 된다.

 

 

꼬꼬무시즌3 이윤상 유괴 살인 사건7

최초로 거짓말탐지기를 범죄 수사에 활용한 첫 사례.

 

주영형을 거짓말탐지기로 조사한 결과,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반응이 나오기도 한다. 마침내 11월 29일, 경찰은 주영형의 자백을 받아낸다.

 

한국에서 거짓말탐지기가 범죄 수사에 활용되기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된 사건들 중 하나인데 당시 검사를 맡았던 담당자에 따르면, 처음엔 반신반의하던 형사들도 확실하게 꼬리를 잡게 되자 거짓말탐지기를 신뢰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꼬꼬무시즌3 이윤상 유괴 살인 사건8

범행 동기는 범인이 평소 도박으로 빚 1천만 원을 지고 빚 독촉을 받게 되자, 비교적 가정이 유복했던 이윤상을 유괴하여 금품을 뜯어내려 했던 것인데, 이 과정에서 범인은 자신이 과거 여중 재직 시절부터 불륜관계에 있었던 범행 당시 여고생 이 모양과 고 모양을 가담시켰다.

 

처음엔 이윤상의 누나를 유괴하기 위해 이양을 통해 접근했다가 실패하고, 대신 이윤상을 유괴한 것이다.

 

 

꼬꼬무시즌3 이윤상 유괴 살인 사건9

진술한 바에 따르면, 주영형은 유괴 다음날인 11월 14일 오후 6시경, 범행 아지트인 영등포구 모 아파트에서 이윤상이 "누나를 유괴하려 한 것도 선생님이에요?" 하며 고함치자 명주실 노끈으로 손발을 결박하고 반창고로 입을 틀어막은 뒤 이불을 뒤집어씌웠다고 한다. 

 

그리고 곧바로 아파트를 빠져나왔다가 다음날 아침에 확인해 보니 이윤상을 그동안 이미 질식사해 있었다는 것.

 

이후 11월 30일경 그는 이양의 협조를 얻어서 사망한 이윤상을 여행용 큰 가방에 넣은 다음 이것을 PVC물통에 옮긴 뒤 번호 미상의 용달 트럭을 불러 북한강변에 암매장한다.

 

 

꼬꼬무시즌3 이윤상 유괴 살인 사건10

이 사실을 진술하는 과정에서 주영형은 자신이 이윤상을 직접 교살했다고 자백했지만 곧 번복한다. 시대적으로 1980년대 당시는 무죄 추정의 원칙 따위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고문이 횡행했으므로 그도 고문으로 인한 허위자백...이라고 하는데 죽이기 전에 협박에 이용할 목소리 등을 녹음하는 등 주도면밀한 모습을 보여 오히려 이게 거짓말 아니냐는 말이 있다.

 

애당초 비닐봉지 등 살해 목적의 도구가 준비되어있었고 무엇보다 납치범이 면식범인 경우 자신의 범죄 은폐를 위해 피해자를 죽이는 일이 일반적이라고 한다. 어쨌거나 이후 진술한 자백에서도 살인 혐의 자체는 결국 인정되었다.

 

 

꼬꼬무시즌3 이윤상 유괴 살인 사건11

이양은 유인과 감금, 살해에는 가담하지 않고, 주영형의 요구에 따라 협박 전화와 금품요구, 시체유기에 협조하였으며, 고양은 협박편지 작성에 가담했다.

 

수사망이 좁혀오자 주영형은 경찰의 수사가 너무 괴로워 자살한다는 내용의 유서를 써 수사에 혼선을 주고, 범행에 가담한 이양과 고양과의 동반자살을 계획하기도 했다. 

 

이양에겐 가장 먼저 자살하라고 가스 라이팅 해 증거를 없애려 시도하기도 한다. 이양은 수면제 40알을 먹고 자살을 기도했으나 실패로 끝났으며, 고양에게는 청산가리를 쥐어주며 "나를 사랑하면 나를 위해 죽어라"라고 자살을 종용했고 실제로 죽기 위해 자살할 날짜를 잡아놓고 기다렸지만 그날이 되기 전 같은 해 11월 30일 전부 검거되면서 이루지 못했다.

 

 

꼬꼬무시즌3 이윤상 유괴 살인 사건12

결말

 

재판 결과 주영형은 유괴 살인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으나 나머지 두 여학생에게는 협박편지 작성 가담 등의 범행 일부 동조 협의만 적용되었다.

 

그 뒤 범인 주영형은 1~3심을 거쳐 1982년 11월 23일 사형이 확정되었고, 공범 이양에게는 1심에서 징역 10년. 2심에서 징역 단기 3년, 장기 5년형이 선고되었고 상고가 기각되어 형이 확정되었다. 고양은 1심에서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고 이후 항소를 포기하여 역시 형이 확정되었다.

 

두 여학생은 형량을 받아들였으나 주영형은 사형을 면하려고 재심을 여러 번 청구했다. 그러나 기각되었고, 1983년 7월 9일 결국 교수형으로 처형되었으며 사형 집행 전 개신교에 귀의했는데 "나는 하나님의 품에 안겨 평화로운 마음으로 떠나가며, 그 자비가 희생자와 가족에게도 베풀어지기를 빌겠다"는 유언을 남겼다.

 

주영형은 자신의 눈과 콩팥을 사회에 기증하기도 한다. 그의 장기는 대학생 등 4명에게 기증되었다. 당시 전두환의 말 "살려 보내면 너도 살고, 죽여 보내면 너도 죽는다"는.. 그 말이 이루어진 셈이다.

 

 

꼬꼬무시즌3 이윤상 유괴 살인 사건13

사건 이후 1991년 3월 경향신문 근황 기사 등을 종합한 바에 의하면, 이윤상군의 어머니 김해경 씨는 남편과 함께 1982년에 '윤상 장학회'를 만들어 지체장애 학생들을 물심양면으로 돕는 한편 수기집 《비정이어라》를 냈지만, 췌장암에 걸려 투병하며 1985년 2월 14일 천주교로 귀의했고, 3월 12일에 아들 곁으로 가신다. 

 

아버지 이정식 씨는 이듬해 재혼하여 86년과 88년에 아들을 얻었으나 여전히 대인기피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공범 이양은 1985년 12월 성탄절 특사로 석방되었고, 고양은 1984년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이양은 몇 달 뒤 회사원과 결혼해 서울 근교 지역에서 평범하게 살았으며 고양은 안양에서 살다가 강남 룸살롱에 진출했다고..

 

 

꼬꼬무시즌3 이윤상 유괴 살인 사건14

사형장에서 남긴 육성 테이프에서 주영형은 "자신을 파멸시킨 것은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맛을 들인 카드놀이였다"는 말을 남겼는데 실제로 유괴 동기가 도박빚을 갚기 위해서였다. 

 

이 사건은 '주영형 사건' 혹은 '주교사 사건'으로도 불린다. 범인의 신분 때문에, 그리고 범인과 종범인 여고생들이 사제간에 불륜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사실 때문에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준 사건이다. 당시 이 사건이 스승의 자리를 지키자는 명목으로 전국의 중학교들이 단축수업을 할 정도로 임팩트가 컸다고 한다.

 

영화 친절한 금자 씨와 소설 벌레 이야기, 그리고 이를 영화화한 밀양이 이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피해자와 동명이인이었던 가수 윤상이 이 사건에 충격을 받고, 그로부터 10년 후 가수 데뷔를 할 때 성인 이를 빼고 윤상이라는 예명으로 데뷔한다. 

 

이 사건의 범인 주영형이 교사로 재직하던 경서중학교는 훗날 연쇄살인범이 되는 유영철이 사건 몇 년 뒤 졸업한다.

 

 

사진출처, 글 참고 : 꼬꼬무 시즌3, 나무위키, KBS교양, 채널A 뉴스

ⓒ곰곰지영의 글, 사진 [무단도용, 복제, 재배포 금지]

 

관련 글

[꼬꼬무 시즌3] 13회 출격 1954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FIFA 월드컵 스위스)

[꼬꼬무 시즌3] 12회 그곳에 묻혀있다 2011 축령마을 미스터리, 김제 마늘밭 돈뭉치 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