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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시즌3] 10회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요약

두영~it 2021. 12. 22. 11:55

[꼬꼬무 시즌3] 10회
64인의 결사대 - 1976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꼬꼬무 시즌3, 10회는 1976년 8월 18일 판문점에서 미군장교 두 명이 북한군에 의해 희생되면서 벌어진 사건을 이야기한다. 이번 주 이야기 친구는 정용화, 김기혁, 한승연 (SBS 2021년 12월 23일 - 목요일 밤 10시 30분 방송)

[꼬꼬무 시즌3] 10회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요약

꼬꼬무 시즌3 10회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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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시즌3 10회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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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요약 (사건일 - 1976년 8월 18일, 판문점)

 

1976년 8월 18일 판문점 인근 공동경비구역 내에서 미루나무 가지치기 작업을 감독하던 주한 미군 장교 두 명이 북한군이 휘두른 도끼에 희생된다. 이 사건으로 주한 미군 및 대한민국 국군 병력 절대다수가 피해를 입었으며, 남북한은 준전시 상태, 즉 전쟁이 터지기 일보 직전까지 갔었다.

 

판문점 사건, 판문점 도끼 살인 사건, 8·18 도끼 만행 등으로도 불린다.

 

※ 한국전쟁 휴전 이후 23년 만에 공동경비구역에서 발생한 최초의 살인사건이다. 《휴전협정(판문점, 1953년 7월 27일)은 일시적으로 전투행위를 중지한다는 잠정적인 합의로 쌍방의 정부 간 또는 군의 총사령관 사이에 체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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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은 주한 UN 장교를 살해한, 대단히 심각했던 사건이었으며, 박정희를 암살하려 했던 김신조 사건에서도 올라가지 않았던 데프콘이 3단계로 격상되어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던 사건이다.

 

당시 북한에게는 같은 공산권인 소련과 중국이라는 동맹이 있기는 했으나 당연하게도 소련과 중국은 북한이 벌인 정신 나간 행위에 도와줄 의사 따위는 전혀 없었다. 하물며 소련과 중국이 미국과 전쟁을 벌인다? 바로 3차 대전 개전이다.

 

※ 데프콘(Defcon)은 전투준비태세(Defense Condition) 혹은 방어준비태세의 약자.

 

 

 

※ 데프콘 단계는 평화시 5단계 Fade Out(장막이 거두어진다), 경계 대세 4단계 Double Take(대비한다), 한국군이 갖고 있는 작전권이 한미연합군사령부로 넘어가고, 전, 후방 부대 움직임이 달라지며 전군의 휴가나 외출이 금지되는 3단계 Round House(천막을 돈다), 탄약이 지금 되고 부대 편제인원이 100% 충원되는 2단계 Fast Pace(천막을 도는 속도를 높임), 동원령이 선포되고 전시에 돌입하는 1단계 Cocked pistol(권총을 장전한다)가 있다.

 

대한민국은 한국전쟁 이후로 데프콘 4가 항상 발령되어 있으며, 데프콘 3은 두 번 발령되었다. (1976년 8월 판문점 도끼 살인 사건, 1983년 아웅산 묘역 폭탄테러사건, 1999년 6월 제1 연평해전 당시 격상되지는 않았으나 3단계에 준하는 전투 준비 태세 강화 지시가 내려진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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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이 발생한 이유는?

- 고작 미루나무 한그루 때문.

 

문제의 미루나무는 당시 공동경비구역에서 25년생 15m 높이의 나무로 대한민국과 북한 양측이 상대방을 감시하기 위한 시야 확보에 지장을 주고 있었다. 게다가 북한군이 공동경비구역을 출입하는 다리인 '돌아오지 않는 다리' 바로 옆이었다.

유엔군 측 주한 미군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안의 제5관측소에서 제3초소와 비무장지대를 관측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으나 북한 3개 초소에 둘러싸인 제3초소 부근에 미루나무 가지가 무성하게 자라 있어 이를 제대로 관측할 수가 없었다. (당시 한국군 3 초소(CP 3)는 '가장 외로운 초소'라 불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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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8월 18일 오전 10시경, 손꼽아 기다리던 고국으로 복귀를 이틀 앞둔 미군 보니파스 대위(당시 34살)와 한국으로 발령받아 온지 얼마 안 되는 신참 배럿 중위(당시 26살), 이 둘을 포함한 11명의 미군 및 한국군들과 5명의 노무자들은 가지치기 작업에 투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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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오전 10시 47분, 노무자들이 막 가지를 치기 시작하던 그 순간! 이를 지켜보던 북한군 박철 중위와 다른 장교 1명, 그리고 15명의 부사관과 병사들이 나타나 작업 중지를 요구한다. 

 

※ 한국군과 미군 사이에서 악명 높기로 유명했던 북한군 중위 박철의 별명은 미친개, 불독이라고도 불렸다. (실제 이름은 홍성문. 후에 공화국 영웅 칭호까지 받았으나 8년 후 미군에게 사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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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니파스 대위는 미루나무의 위치가 유엔군 측의 관할에 속했기에 보수작업을 하는데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보니파스 대위 경비중대장 직권으로 작업을 계속 지시한다.

 

11시 30분에는 북한군 경비병의 숫자가 30명으로 크게 늘어났고, 박철 중위는 "그만두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고 2차 위협을 가했으나 보니파스 대위는 이를 재차 무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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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박철 중위가 소매를 걷고 차고 있던 손목시계를 호주머니에 넣으며 부하들에게 신호를 보낸다. 북한 육군 경비병들은 일제히 소매를 걷었고, 박철 중위는 즉각 "다 죽여!"라고 소리 지르며 보니피스 대위를 걷어차며 구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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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의 공격명령에 따라 인민군 부사관과 병들은 트럭에 실어 가지고 온 곡괭이, 몽둥이와 함께 노동자들이 작업에 쓰려고 가져왔던 도끼 등을 휘두르며 기습한다.

 

다른 북한군들은 주먹과 곤봉을 이용해 UN군 장병들을 상대로 마구잡이식 폭행을 가했으며, 버려진 북한군 병사의 도끼로 보니파스 대위의 머리를 공격해서 사망, 배럿 중위 역시 참혹하게 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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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식간의 일이었다. 보니파스 대위는 귀국 이틀 전이었으며, 배럿 중위는 부임한 지 약 한 달째였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이루어진 무차별 공격으로 주 타깃이었던 보니파스 대위와 배럿 중위는 도끼에 목숨을 잃게 되고 다른 유엔군들은 부상을 입었으며 급기야 3 초소와 유엔군 트럭 3대까지 파괴되었다.

 

 

 

북한군은 들은 한국군이 권총을 겨누자 그제야 멈추고 도망쳤다고 한다. 당시 공동경비구역 내에서 총기 사용은 엄격히 금지되고 있었기에 총성은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북한 측 초소 역시도 이미 기관총을 겨누고 대치하고 있었던 상황이라 정말이지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왜냐면 경비병들이 소지하는 총기의 사용은 누가 먼저 사용하느냐에 따라 도발의 주체가 결정되고 그것은 곧 전면전을 의미했었기 때문.

 

이는 곧 미국 중국 소련까지 끌어들이며 세계 3차 대전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큰 위험을 안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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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사건은 김정일에 의해서 일어난 것.

 

박병엽 전 조선로동당 고위 간부의 증언록에 의하면, 당시 북한 국가주석인 김일성이 아닌 김정일에 의해서 일어난 것이었다고 한다.

 

당시 북한은 김정일이 후계체제를 구축해나가는 과정이었고, 김정일이 전국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을 통제하고 있었다. 김정일은 당시 미루나무 가지치기를 한다는 보고를 받고 "조선 사람의 본때를 보여주라. 단, 남조선 노무자들은 건드리거나 총을 쓰지 말고 미제놈들에게 본때를 보여줘라."라고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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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상대로 한 강한 대응으로 주한미군 철수를 이끌어내고 내부에 선전하여 결속을 다지며 자신의 후계자 구도를 공고히 하고 싶었던 김정일. 그의 지시로 이루어진 일이 생각보다 커지자 그는 당황한다.

 

"데프콘 3을 발동한다"

 

유엔군 사령관 스틸웰은 대통령 박정희와 함께 긴급회의에 들어가고, 박정희는 "미친개는 몽둥이가 약!"이라며 전투 대비태세를 의미하는 데프콘 3을 발동시키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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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정 공간인 JSA내에서 장교 2명을 어이없는 이유로 참혹하게 잃은 미국의 분노는 극에 달한다. 미국에서 당시 대통령 경선을 준비하고 있던 제럴드 포드 대통령은 즉각 북한을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한다.

 

그리고 곧 미국 백악관에서는 워싱턴 특별 대책회의를 소집해 향후 대응에 대한 논의에 들어간다.

 

그렇지만 판문점에서 일어난 사건만으로는 전면전을 일으킬 수는 없었고 특히 중국과 소련을 자극할 우려도 있어 스틸웰 장군은 우선 사건의 원인이 된 미루나무를 자르고, 이에 북한 측이 추가 도발을 가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에 대한 분위기를 조성하자는 대안을 제시한다.

 

회의를 마친 키신저 장관은 미국 국무부와 함께 중국을 통해 북한 측에 "이 사건의 결과로 빚어지는 어떠한 사태에 대해서 그 책임은 북한에 있다"는 공동성명을 당일에 발표하며, 조용히 있지 않으면 '중대한 결과'가 초래될 것이란 경고의 메시지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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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폴 버니언 작전 (미국의 북한에 대한 보복 작전)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으로 남북한 양군이 대치하는 가운데 1976년 8월 21일, 폴 버니언 작전이 세워졌다.

 

폴 버니언 작전은 제럴드 포드 미국 대통령의 명령에 따라 스틸웰 주한미군 사령관이 문제의 미루나무를 베고 공동경비구역 내에 북한군이 설치한 불법 방벽을 제거하기 위한 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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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폴 버니언 : 북미의 벌목꾼들 사이에 전해지는 설화에 등장하는 거인 나무꾼이다.

 

지원병력 감시 하에 미루나무를 벌목한다는 아주 단순한 작전이었지만, 단순히 벌목을 위한 병력이라고 보기에는 힘든 규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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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로 육, 해, 공 병력 총집결!!

 

전쟁을 방불케 하는 분위기였다. 미국 본토에서 핵무기 탑재가 가능한 F-111 전투기 20대가 한반도로 긴급 파견되었고, 괌에서는 B-52 폭격기 3대, 오키나와 카데나 미공군기지에서 이륙한 F-4 24대가 한반도 상공을 선회하였다. 또한 함재기 65대를 탑재한 미 해군 제7함대 소속 항공모함 미드웨이호가 순양함 등의 중무장한 호위함 5척을 거느리고 동해를 북상하여 한국 해역 인근에 배치되었다.

 

 

 

미 해병 병력 1,800명 등을 동원하는 대규모 무력시위 계획을 수립하였고, 전투준비태세인 데프콘 3이 발령, 폴 버니언 작전 시 유엔군은 데프콘 2(공격 준비태세)를 발령하였다.

 

만약 북측이 무력대응을 한다면? 대기 중인 군사력 총동원해서 개성 초토화 계획까지.. 한국전쟁 이후 처음 미국, 한국, 북한이 준 전시태세에 돌입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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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어마어마한 규모는 북한에 대한 전면적 공격보다는 휴전선의 고질적인 문제였던 서해안 부분 정리, 개성 및 연백평야로의 진격, 옛 38선 이남 대한민국 영토의 수복 등을 고려한 병력이었다.

 

공산권 측에 명분을 주지 않기 위해 북한이 추가 도발 없이 침묵한다면 무력시위로 끝낼 계획이었지만, 유사시에 북한이 추가 도발을 하면 바로 반격할 생각이었다.

 

일단 미군의 계획은 작전 시 교전 사태가 발생하면 포병 부대는 개성의 인민군 육군 막사에 포격을 개시, 개성 위쪽 시변까지 포격해서 인민군 육군 포병 전력을 싸그리 없앤다는 것이었으며, 북한 육군 전차 부대의 남하와 같은 구체적인 전시상황 계획까지 완벽하게 수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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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특전사 64인의 결사대 보복작전

 

대한민국은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특전사 제1 공수특전여단 김종헌 소령을 지휘관으로 하고 64인의 특전사 대원들로 구성된 결사대가 편성되어 보복작전이 실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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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공동경비구역 내에서 총기 사용은 엄격히 금지되고 있었기에 태권도 유단자로 구성된 한국군 특전사 결사대원들은 카투사로 위장, 권총과 수류탄은 전투복 속에 숨기고, 크레모아, M79 유탄발사기 등은 삽, 곡괭이 등 작업도구 밑에 감추는 식으로 트럭에 탑승하여 공동경비구역에 들어가 도끼와 몽둥이를 가지고 북한군 초소 4개를 파괴한다. 

 

대원들이 초소에 접근해 손에 도끼와 소총을 들고 활보하며 초소를 난장판으로 만들자, 북한군은 모조리 도망쳤다. 간간이 나타난 북한군은 독이 오른 특전사 대원들이 위협을 하며 욕을 퍼붓자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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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매복 작전을 수행 중이던 1사단 수색대원은 훗날 인터뷰에서 이러다 정말 전쟁 나는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살벌한 분위기였다고 한다. 

 

특전사 결사대는 북한군이 특전사의 공격에 대해 무력대응을 할 경우엔 북한군들을 과감히 사살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다만 먼저 북한군을 사살하지는 마라는 명령이 내려져 있었다. 즉, 북한군을 구타하고 깽판을 놓다가 북한군이 발포하면 바로 응사해서 사살하도록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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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북한군에게 선제공격을 당하는 대원들은 전사하게 될 것이므로 그야말로 죽음을 각오한 결사 조로서의 투입인 것이다. 실제로 출동 직전에 유서와 손톱 등을 남겼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북한군이 처음부터 저항 없이 무조건 도망가기만 해서 교전은 발생하지 않았다.

실제로 작전에 투입된 1 공수 대원 증언에 따르면, 유서 작성, 손톱과 머리카락을 잘라서 남겼고, 출동 전까지 외출 외박이 금지된 채 영내 대기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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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소를 부술 때 북한군 초소 병력들은 도주를 했지만, 곧이어 소총으로 무장한 병력들이 분계선을 따라 도열하여 대치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발포 등의 공격은 없었고 모든 초소를 파괴하는 걸 구경만 하였다.

 

특전사 대원의 증언에 따르면 무표정한 북한군 무장 군인들의 표정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고 한다. 초소를 파괴하는 동안 나머지 특전사 대원들도 소총으로 무장하고 북한군 출동 병력과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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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어디까지나 나무를 벌목하기만 하고 북한의 반응을 볼 계획이었기에 실제 전쟁을 수행할 전력을 동원했어도 무력시위에만 그쳤고 그렇다 보니 한국 육군 특전사 대원들이 북한 초소를 공격하자 대경실색했다.

 

 

미루나무를 자른 후에 특전사 대원들이 북한군에 욕설을 퍼붓고 인민군의 초소로 달려 나가자 엄청 당황했다고 한다. 미군이 전쟁 발발을 우려해 결사대를 제지하자, 특전사 대원들은 북측 도로 차단기를 제거하기 위한 진격에 불응하는 미 육군 트럭 운전병을 권총으로 위협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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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항공대의 AH-1 공격헬기 7대와 다목적 헬리콥터 20대의 직접 엄호 및 도끼와 권총으로 무장한 채 30여 명으로 이루어진 미군 공동경비부대들이 돌아오지 않는 다리 같은 판문점 주변의 주요 시설들을 안전하게 확보했고 미 육군 공병 8명으로 이루어진 2개 팀이 전기톱으로 미루나무를 자르는 데 성공했다.

 

대내적 대응과 다르게 국제적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눈치챈 북한은 폴 버니언 작전이 시작되고 159명에 달하는 무장 병력을 출동시키지만, 결국 도발하지 않는 길을 선택한다.

 

북한이 침묵했기 때문에 보복은 하지 않기로 결정하여 작전은 그대로 종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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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박했던 순간. 45분 만에 작업은 종료되고 예상치 못한 한미 양국의 강력한 대응과 언론을 통해 군사협정을 어기고 공동 경비구역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의 책임이 분명 해지며, 중국 소련까지 비난하기 시작하자 작전 1시간 만에 결국 김일성은 총사령관의 자격으로 유엔 사령관에 사과의 뜻이 담긴 '유감 성명'의 메시지를 보낸다. 

 

처음에 미국은 북한의 '유감 성명'이 잘못을 인정한 것이 아니라며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다가 24시간 만에 이를 수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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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이후 JSA는 이전과 같은 자유롭지만 애매했던 경계 대신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확실한 경계가 생겼고 이전의 초소들은 모두 폐쇄되며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서로 대치하는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북한은 1년 반 동안이나 준전시상태를 풀지 않았고, 대한민국도 북한을 강력하게 비판하는 등 사건의 파문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이후 사건 당사자인 미국이 빠진 상태에서 대한민국과 북한 간의 군사적 긴장상태가 지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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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10주년인 1986년 8월 18일에는 근처에 있는 캠프 키티호크(Camp Kitty Hawk)가 보니파스 대위를 기려 캠프 보니파스로 개칭되었다.

 

캠프 보니파스(Camp Bonifas)는 대한민국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비무장 지대 남쪽 400 m, 군사분계선 2,400 m 남쪽에 있는 대한민국 육군과 주한 미군의 합동 군영이다. 2006년 대한민국에 반환되었다.

과거 캠프 보니파스에는 주한 미군 일부 요원과 중립국 감독위원회의 감시단이 주둔했었다. 그들의 주요한 임무는 1953년에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사이에 체결된 정전협정을 감시하며 서로의 무력 도발을 억제하는 것이다. 이 기지 안에서 대한민국과 주한 미군 장병들은 비무장 지대 관람과 공동경비구역 관광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 기지는 예전에 캠프 키티호크, 캠프 리버티 벨로 나뉘어 있었으나, 1976년 8월 18일 판문점 도끼 살인 사건 당시 조선인민군에게 살해된 주한 미국 육군 소속의 아서 G. 보니파스 대위(사후 소령)를 기리기 위해 그의 이름을 따서 개명하고 합쳤다.

기지 안에는 인조잔디로 조성된 파3 원홀 골프 코스가 있다. 이 골프 코스의 3면은 지뢰지대로 둘러 쌓여 있기에,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트는 이곳을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골프장"이라고 불렀으며, 최소 한 번의 지뢰 폭발이 있었다고 보고되었다.

 

🌲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64인의 특전사 대원들의 보복작전이 북한을 건드려 그들이 만약 뭣도 모르고 덤볐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 지금의 북한이 그 당시 망하고 대한민국이 모두 장악했을 수도 있겠다. 

 

 

사진출처 : 사건현대사, KBS역사저널 그날, SBS 꼬꼬무, 선을 넘는 녀석들, ,나무위키,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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